개요
[세계여성포럼]"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되는 여성파워"
입력시간 | 2012.10.15 08:35 | 권소현 기자 juddie@edaily.co.kr
여성정책 앞장선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
"여성에 대한 벽 없애려면 할당제 확대해야"
"여성에 대한 벽 없애려면 할당제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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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감이 열렸던 지난 11일. 네 번째 질의자로 나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거세게 몰아붙인 여성 국회의원이 있었다. 바로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 그러나 오전 국감을 끝내고 인터뷰를 위해 의원실로 돌아온 유 의원은 국감장에서 호통을 치던 모습과 달랐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성 정치인 중에서도 대차기로 소문난 유 의원은 진정 정치를 즐기는 인상을 줬다. 남성들의 기득권이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 강한 정치판에서 생존만으로도 벅찰 텐데 말이다.
◇여성에겐 높은 정치의 벽
유 의원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이어 졸업 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높은 벽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구로공단에서 위장취업해 재봉틀을 돌리는 여공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분노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대우에 환멸을 느꼈다.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유 의원. 정치계 입문은 비교적 수월했다. 1995년 광명시의회 의원으로 출마해 2등이었던 후보보다도 세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어 당당히 의원으로 당선된 것. 하지만 여세를 몰아 도전했던 199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출마해보지도 못하고 새정치국민회의 당내 경선에서 미끄러졌다. 여성에 대한 높은 벽을 제대로 실감한 것이다.
유 의원은 “당시 우리나라 정치는 절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정치판에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여성들이 더 확실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지자체장 선거에서는 떨어졌지만 마침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여당이 된 국민회의의 여성국장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권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 행보에 나섰다. 미국의 민주당 여성후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여성정치운동 단체 ‘에밀리즈 리스트(Emily’s List)’를 본떠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힘쓰는 한편, 제도적으로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고 소수계 우대정책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여성에게 적용하는 등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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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력 덕분에 여성의 정치참여 환경도 서서히 바뀌었다. 16대 국회 때만 해도 6%를 넘지 못했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대에 10%를 넘어서더니 19대에 15.7%를 기록했다. 비례대표뿐만 아니라 지역구 공천에서도 여성 할당제를 도입한 덕이다. 유 의원은 “이번에 지역구에서 여성할당제 의무공천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은 한국 정치 발전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두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지난 총선 때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실제 공천받은 여성 후보는 의무공천 비율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비율도 여전히 낮다는 것이다.
또 여성정책은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식으로 최종 도입이 될 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당헌이나 당규에 넣기로 하고 실무적으로 서류작업을 하다 보면 사라지거나 톤 다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30%를 할당한다’가 ‘여성에게 30% 이내에서 할당한다’는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남성 의원들의 반대도 있지만, 여성 의원들도 그게 가능하겠나라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때 힘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유 의원은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를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꼽는다.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바첼레트는 선거에서 장관직의 5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공약을 내걸었고 당선 후 실제 공약을 지켰다”며 “보수적인 남미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놀라웠다”고 말했다.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계에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는 게 유 의원 생각이다. 입법활동을 통해 제도를 고치고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훌륭한 여성들은 많은데 여성차별적인 관행과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가장 먼저 제거할 수 있는 곳이 정치권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책무가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19대 국회의원으로서 우선 공기업 이사에 여성할당제를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으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유 의원은 ‘여풍’ ‘알파걸’ 등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양성평등이 이뤄졌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남성들의 기득권이 제일 높은 곳이 바로 정치권이고, 기업이나 관료집단도 마찬가지”라며 “여성들이 가진 파워나 생명력, 부드러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She is..
유승희 의원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나섰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기인으로 참여해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1995년 광명시의원이 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놨다. 국민회의 여성국장, 새천년민주당 여성국장 등을 역임했고 2004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호주제 폐지, 지역구 여성 공천 30% 쿼터제, 비정규직의 70%인 여성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재벌 개혁, 보육 예산 확대, 이주 노동자 차별 금지, 직장 가정 내 성폭력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발로 뛰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성북구 갑에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돼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